사람의 수가 늘면서 연주 홀의 크기도 점점 커졌고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아예 운동장 또는
야외 음악회들이 대 규모 청중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그러나 고전 음악의 진수를 맛보기 위해서는 무대와 객석이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작은 홀을
필요로 하며 비록 작은 홀일 찌라도 처음부터 연주 홀로 설계된 전문 공연장이야 말로 음악의
품격을 한 층 높이는 문화 공간의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200석 규모의 아담하면서도 전문 공연장으로서 모든 것을 갖춘 모차르트 홀의
탄생은 강남의 새로운 정신문화의 명소로서 고전음악의 진정한 향기가 무엇인지를 확인 시켜 줄 것이다.

하지만 모차르트 홀의 탄생을 지켜보면서 가슴 뿌듯한 감동을 느끼는 것은 그 중심에 피아니스트
신수정교수와 어머니 김석태여사 그리고 먼저 가신 아버지 신집호선생의 정신과 예술적 염원이 고스란히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수정교수를 한국의 대표적인 예술가로 키워낸 김석태여사는 8순을 넘긴 나이에도 마지막 사업으로
건물을 올리면서 모차르트 홀을 탄생시켰고 유난히도 음악 친구들과 앙상블을 즐기는 딸에게 신실한
예술의 터를 마련해 준 것이다.

그럼으로 모차르트 홀의 탄생은 여느 홀과는 출발부터 다르며 이를 끌어안은 신수정교수와 모차르트 홀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반기는 우리 모두는 예술적 정신이 언제나 살아 숨쉬는 공연장으로 발전 시켜야
할 책임을 져야 하겠다.

문화라는 말을 그럴 뜻하게 쓰면서도 정작 고전음악의 향기가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모차르트
홀은 새로운 음악적 경험을 가능하게 할 것이며 무대위에서는 음악 하는 즐거움을 그리고 무대 아래서는
음악 듣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감동의 공간이 될 것이다.

오늘의 작은 출발이 결국은 방방곡곡으로 울려 퍼져 한국 공연사의 새로운 역사를 쓰겠거니와 어떤 사심도
없이 오직 질 높은 연주를 질 높은 연주 홀에 담아내야한다는 간절한 소망이 평생을 교육사업에 바친 두 분의
선각자에 의해 현실화 되었다는 것은 다시 한번 맑은 정신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1956년, 열네 살의 중학교 3학년 신수정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으로 해군정훈음악대와 협연,
데뷔 무대를 가졌고 빈국립음대에서 공부하면서 모차르트와의 인연은 깊이를 더해 이제 모차르트 홀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는데 모차르트의 우아함과 맑고 밝은 울림처럼 세상을 향해 모차르트 홀이 빛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2004. 5. 한상우 (음악평론가)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언제나 친구입니다.
음악을 연주하는 기쁨 속에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손을 잡고
우리는 다시 아름다움을 향한 그리움으로 출렁입니다.

세상엔 평화를
사람들에겐 희망을 노래하는
모차르트홀이 되기를 축원하는 마음들이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
아름다운 和音으로 일어섭니다.

나무들이 바람 속에
사랑을 연주하는 초록빛 5월
초록빛 사랑으로 축하드립니다.
음악으로 넓은 길을 열어 갈
모차르트홀의 새로운 시작을ㅡ
꽃피고 열매 맺을 소중한 꿈을.